[이건희칼럼] 묻어두고 곳간 걱정하는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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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 전체의 재정규모는 약 30조원에 이른다. 인구 1000만명인 서울시의 연간 재정규모가 본청이 20조원대, 자치구까지 포함해 30조원대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참고로 지난해 말 201개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총학생 수는 217만3939명에 달했으며 교원은 6만6629명으로 나타났다.

대학 재정은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등교육서비스를 생산 및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배분·지출하는 경제활동이다. 2013년 결산규모가 가장 큰 대학은 ▲연세대(1조7783억원) ▲서울대(1조6385억원) ▲고려대(1조658억원) ▲이화여대(9362억원) ▲성균관대(8482억원) ▲한양대(7845억원) ▲경희대(7235억원) ▲건국대(5988억원) ▲서강대(5787억원) ▲경북대(5274억원) 순이다.

과거에 비해 대학 결산규모가 크게 증가했는데 여기에는 대학의 장부를 거쳐 학생에게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으로 외형적인 수치가 실질적인 대학의 재정상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교비 회계에서 청운대(689억원), 을지대(687억원), 연세대(643억원), 고려대(294억원)처럼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한 대학도 있지만 경희대(-163억원), 조선대(-115억원), 원광대(-111억원), 단국대(-89억원), 포항공대(-54억원) 등 64개 대학은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등록금 의존하다 열람실 축소까지


8년간 등록금 인하 또는 동결 추세가 이어지면서 일부 대학의 경우 재정부족으로 교육여건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심지어 올해 여름방학 기간에 경비를 절감한다는 명목으로 열람실 운영시간을 줄이고 일부 열람실을 폐쇄하는 대학이 등장해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대학은 국가 경제발전을 이끄는 인력을 배출하는 곳이므로 대학 재정의 건전성은 국가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사립대학은 수입에서 등록금 비중이 약 50~60%로 높은 편이다. 지방대일수록 등록금 의존도가 더 높은데 80~90%에 달하는 대학도 있다. 이밖에 법인으로부터 받는 전입금과 국가보조금 등이 수입에 포함된다. 수입 중 사용 목적이 장학금, 연구비, 시설투자비 등으로 미리 정해진 돈은 대학 안에 잠시 머물다 곧바로 지출된다. 따라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실질적으로 등록금 수입뿐이다.

사립대학은 2004년 이후 매년 지출예산의 일정 부분을 기금으로 적립한다. 4년제 사립대의 2013회계연도 누적적립금 총액은 9조2559억원으로 집계됐다. 적립금이 많은 대학은 ▲이화여대 8207억원 ▲연세대 6651원 ▲홍익대 6641억원 ▲수원대 3367억원 ▲고려대 3096억원 ▲청주대 2928억원 ▲동덕여대 2495억원 ▲성균관대 2482억원 ▲계명대 2287억원 ▲덕성여대 2259억원 순이다.

15개 대학은 적립금이 한푼도 없었다. 누적적립금이 많은 것은 기업에서 유보율이 높은 것과 비슷하다. 어떤 경제주체자라도 유보된 자금이 충분해야 안전망이 튼튼하고 미래변화에 대응능력이 생긴다.

사립대학이 적립금을 학생지원에 사용했다면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더 컸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미래 학생에 대한 혜택을 확보하는 것과 관점이 다르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학기금을 보유한 하버드대, 예일대와 비교할 것 없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한국 대학의 적립금규모는 미국·캐나다 대학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정기예금만 찾는 국내 대학들

중요한 것은 적립금의 효율적인 투자 및 운용이다. 교육여건이 열악함에도 과도하게 적립금을 축적하는 것은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각 대학이 적립한 내역을 보면 건축기금적립액이 가장 많은 편이고 연구기금, 장학기금, 퇴직기금 적립액 등이 있다. 상당수 대학이 여러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제2·제3캠퍼스에 필요한 건립자금을 쌓아온 것이다.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에 따르면 대학은 적립금의 50%까지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등록금을 주요재원으로 하는 적립금이 위험성 있는 금융투자에 사용되는 데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은 기금 전부를 안전한 확정금리형 예금과 국공채에만 넣는다.

82개 대학기금을 심사한 ‘제3회 한국 기금·자산운용대상’(2016년)에서 숭실대가 교육부장관상인 대상을 받았는데 자산배분을 보면 70%가 예금, 30%가 채권으로 구성됐으며 2년간 수익률은 연 3~4%다. 전국 사립대 누적적립금(2014년) 대부분은 정기예금(84.6%)에 예치됐다. 여기서 나오는 이자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나 최근 이율이 하락하면서 이마저도 힘들어졌다.

미국의 대학기금은 한국과 정반대로 안전자산인 채권의 비중이 10%에 불과하고 주식 33%, 부동산·SOC(사회간접자본)·자원·사모펀드 등 대체투자의 자산비중이 53%를 차지한다. 그 결과 상당한 투자수익을 거둬들여 전체 수입에서 투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이른다. 나머지는 등록금 30%, 정부지원금 15%, 기부금 10% 등으로 이뤄진다.
스탠퍼드대학의 경우 2015~2016년 수입원이 ▲등록금 16% ▲기부금과 운용수입 21% ▲기타 투자소득 4% ▲헬스케어 수입 18% ▲연구비 17% ▲양도자산 6%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 9% ▲기타 9%로 다변화됐다. 하버드대는 수입에서 투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39%에 달한다.

국내 대학은 약 5분의1 정도만 금융에 투자하는데 투자수익률이 미국 주요 대학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2014년 2월말 기준 국내 33개 사립대가 투자수익률 -0.14%로 손실을 기록했다. 서강대는 3년 연속 손해가 계속돼 투자원금 103억원의 수익률이 -29.86%를 기록했다. 투자원금이 2007억원인 연세대(2.27%)와 1585억원인 홍익대(0.66%)를 비롯해 100억원 이상인 대구카톨대(0.01%), 성신여대(-3.12%), 고려대(1.53%), 경남대(-8.68%), 인하대(-0.28%) 등도 손실을 보거나 수익을 내더라도 수익률이 예금 이자율보다 낮았다. 38.48%를 기록한 경동대만 유일하게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의 사립대는 2014회계연도에 전반적으로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인 예일대(20.2%), 프린스턴대(19.6%), 다트머스대(19.2%), 펜실베니아대(17.5%), 컬럼비아대(17.5%), 브라운대(16.1%), 코넬대(15.8%), 하버드대(15.4%)는 최소 15%를 넘었다. 2013년에도 하버드대(11.3%), 예일대(12.5%) 등의 수익률이 높았다. 예일대 기금은 2010년 8.9%, 2011년 21.9%, 2012년 4.7%를 기록하면서 기금규모가 크게 늘었다. 하버드대 기금도 장기 연평균수익률이 5년 11.6%, 10년 8.9%, 20년 12.3%, 40년 12.3%로 꾸준하다.

투자자산 배분은 예일대(2013년말)의 경우 PEF(사모펀드) 비중이 32.0%로 가장 높고 부동산 20.1%, 절대수익추구펀드(헤지펀드) 17.8%, 해외주식 9.8%, 자원(실물자산) 7.9%, 미국주식 5.9%, 채권 4.9% 등으로 나타났다. PEF는 투자자가 사모방식으로 중장기 자금을 조달해 신규창업회사,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 부실채권 등에 투자한다.

같은 시점에 연세대 기금은 예금·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비중이 60.0%에 달했다. 하버드대 기금(2015년)은 주식 51%, 부동산 23%, 대체투자 16%, 채권 10%로 구성됐다. 하버드대 기금의 포트폴리오별 수익률(2014년)은 공모주식 20.4%, 사모주식투자 20.3%, 부동산 10.9%, 채권 7.7%로 나타났다.

한국 대부분의 대학이 저위험·저수익상품으로 운용하는 것과 달리 미국 대학은 중위험·중수익상품 비율이 높고 고위험·고수익 상품도 일정범위 내에서 투자하며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자산운용에 전문성을 확보해 운용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 구조조정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2023년 사립대 등록금 수입과 입시수수료가 약 3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외 수입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사립대 한곳당 수입이 평균 16.6% 줄어든다. 지출항목에서 장학금과 학생지원비 등 학생경비 지출이 등록금수입 감소율(35%)만큼 줄어들고 다른 지출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2023년에는 지출액 대비 8.3%의 수입부족분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학당 85억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광역시의 지방 사립대 적자폭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상당수 사립대들이 교직원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몇년째 교수 연봉을 동결하고 비정년트랙을 늘리거나 신임교수를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대출이 많고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대학도 있다. 대학의 은행차입금 중 절반 이상이 연 3.5%가 넘는 고금리대출이므로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는 특수채를 발행해 ‘사립대 상생대출기금’을 조성하고 연 2.5%의 저금리로 빌려주는 것을 추진한다.

◆여러 대학 ‘투자풀제도’ 도입 시급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한국 대학은 수입원 다변화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그럼에도 원금이 보전되는 저금리상품에만 돈을 넣어 물가상승률 감안 시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학기금은 주로 건축, 장학금 지급에 쓰이므로 보유기한이 길어서 장기투자에 유리하다. 그러나 실상은 3년간 넣어둘 수 있는 장기자금을 3개월 단기자금과 함께 예금에 넣는 경우가 흔하다.

모 대학 재무팀 관계자는 “대그룹 회사채에 투자하려 했으나 그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보고서로 써내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투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의 경우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으므로 시스템에 의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 대학기금의 투자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자산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해 운용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은 ‘하버드 매니지먼트 컴퍼니’(HMC)라는 자체 운용회사를 두고 많은 전문인력이 직접 기금을 굴리며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

한국 각 대학이 하버드대처럼 운용하기는 힘든 만큼 여러 대학기금을 모아 전문운용시스템을 구축, 운용하는 투자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공적연기금을 한데 모은 연기금투자풀이 2001년 출범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수탁액은 몇배로 증가했다. 전문가가 운용하는 대형투자풀의 효용성이 검증됐으므로 대학기금에도 적용할 만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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