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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고갱 그리고 아를의 커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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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게이포드의 저서 ‘고흐 고갱 그리고 엘로우 하우스’에 따르면, 고흐는 평소 음식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대신 커피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아니 중독되었다고 한다.


그가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화실을 옮긴 후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커피를 끓이는 도구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커피에 의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술과 더불어 진하디 진한 커피는 유약했지만 열정적인 젊은 작가에게 힘을 솟게 하는 에너지 원이었다.


그는 술과 커피로 몽환과 각성을 반복하며 그림 작업을 이어갔다.
고흐는 일생 동안 900여 점의 페인팅, 1,100여 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총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 서울카페쇼 모습 (사진=류승희 기자)


우리가 알고 있는 ‘해바라기’, ‘아를의 침실’ 등을 비롯해 유명한 작품들은 그가 자살하기 2년 전 아를에서 그린 것들이다.


다행히 그는 아를에 머무는 동안 까페에 관한 그림도 여러 점 남겼다.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야외 까페의 밤의 풍경을 파랑, 초록, 노랑으로 밝고 화려하게 표현한 ‘아를 포름 광장의 밤의 테라스’ 역시 1888년 그가 아를에 머물 때 그린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며칠 전, 원근법을 무시한 채 과장되고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아를의 밤의 까페’를 수일 밤을 새면서 작업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며 이 그림을 완성했을까?


고갱은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 수습도선사, 증권거래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다. 그는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갱은 서른 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증권거래인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흐보다는 고갱에게 연민의 정과 동질감을 더 느낀다. 나 역시 그처럼 결혼 후 서른 넷이라는 늦은 나이에 주식시장을 떠나 커피를 전업으로 삼았으며, 그 전에도 다양한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면에서 그와 견줄 수 없고, 그의 궤적을 따라 살 수도 없다는 큰 간극이 있다.


1887년, 고갱은 결국 아내와 다섯 아이를 버리고 파리에서 7000km나 떨어진 카리브 해에 위치한 마르티니크 섬으로 떠난다. 그 섬은 1720년 프랑스 군 연대장인 드클리외가 본국으로부터 가져온 커피나무 묘목의 이식에 성공한 후 18·19세기 동안 중남미에 커피를 전파시킨 곳이다.


고갱이 마르티니크 섬에 머물던 1887년에는 이미 섬 어디에서나 커피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커피를 사랑했고, 이 섬에서 ‘열대의 식물’이란 작품을 남겼다. 그런 점에서 그가 중남미 커피의 식물원이었던 마르티니크 섬에 머물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고갱은 마르티니크 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회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으며, 자신의 화실은 열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마르티니크 섬에서의 경험이 생애 후반부 태평양의 타히티 섬에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사르는 계기가 된 셈이다.


1888년 10월 23일 새벽 5시경, 고갱은 힘겹고 지루한 이틀 간의 기차 이동 끝에 아를 역에 도착했다. 그가 처음 들른 곳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24시간 불을 밝힌 까페 드라가르였다.


아마도 그는 평소 즐겨 마셨던 까페오레를 주문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 마주친 아를의 사람은 까페 여주인인 조셉 지누였다. 그저 작은 마을의 일개 까페 주인에 불과했던 조셉 지누가 고갱을 만나 19세기 후반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순간이다. 얼마 후 고갱은 ‘밤의 까페, 아를’을 그리는데, 그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누 부인이었다.


고갱은 고흐가 동생의 테오의 도움으로 마련한 엘로 하우스에서60일 간 함께 지냈다. 둘은 까페 드라가르를 자주 찾아 작업에 몰두했다. 즉 이 곳은 그들의 또 다른 작업실이며 휴식처였던 셈이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 이외에는 태생도 예술적 성향도 달랐던 둘은 예술에 대한 시각 차로 격렬한 논쟁을 거듭했다. 그 결과 고흐는 스스로 왼쪽 귀를 잘랐고, 그 소식을 접한 고갱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를을 떠났다. 그 뒤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결국 자살과 심장마비로 각자의 삶을 마감한다.


만약 천국에서 고흐와 고갱이 만났다면, 여전히 티격태격 하고 있을까 아니면 화해 후 천국의 까페 드라가르에서 커피를 곁에 두고 또 다른 역작을 남기고 있을까?


구대회 커피테이너(커피꼬모 대표) enterfn@mt.co.kr  | twitter facebook  |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머니S' 편집국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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