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한국도 '밥딜런'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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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세계 최고수준의 상금(11억여원)과 함께 명예가 주어진다. 노벨상 시상식은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올해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의외의 인물이 눈에 띈다. 바로 밥 딜런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까지 대중가수가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중가수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115년 역사상 처음이다. 포크송이 유행하던 시기에 밥 딜런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보낸 세대에겐 더 놀라운 일이다.

한국이나 아시아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에 대중가수인 신해철이나 정태춘이 선정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밥 딜런의 노래 가사에 철학적 메시지가 많이 담겼다면 신해철이 만든 노래 중에도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가사가 많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2015)이라는 책을 통해 신해철을 ‘한국의 밥 딜런’으로 규정했다. 밥 딜런의 노래에 시대적 저항정신이 들어있다면 정태춘도 저항가수로 유명했으며 서정성 넘치는 훌륭한 가사를 많이 남겼다.

밥 딜런의 수상 이유가 “미국 가요의 전통 안에서 참신하고 시적인 표현을 창조해낸 공로”라고 한다. 그렇다면 작고한 박건호 작사가도 한국 가요의 전통 안에서 참신하고 시적인 표현을 창조해낸 인물이다.

◆노랫말, 문학을 개척하다

물론 문학인이 아님에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정치인 윈스턴 처칠(1953년 수상),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1950년 수상), 역사학자이면서 독일 라이프치히대 법학과 교수를 역임한 테오도르 몸젠(1902년 수상) 등이다.

이들은 문학과 거리가 먼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문학적인 저서를 남겼다. 그에 반해 밥 딜런은 회고록을 제외하면 대중가요만을 작곡·작사해왔다. 노래 가사가 보편적으로 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포크가수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미국 포크록 대부 밥 딜런. /사진=뉴시스 DB

밥 딜런은 1999년 <타임>지가 뽑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명이었고 2008년엔 특별한 시적 힘을 가진 작사로 팝 음악과 미국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친 공로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는 대표적인 저항가요, 반전가요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적 가치 외에 사회적 영향력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밥 딜런은 노벨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지만 실제 수상 가능성을 내다본 사람은 상당히 적었다. 이번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베팅 순위(10월13일)에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가 1위를 차지했고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시리아의 시인 아도니스가 공동 2위에 올랐다.

밥 딜런은 한국의 시인 고은(7위)보다 낮은 8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수상이 가장 유력시 되던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는 흥미롭게도 노벨상이 아닌 박경리문학상(제6회, 토지문화재단 주관)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박경리문학상이 노벨상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며 수상소감을 밝혔고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문학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시·소설 등 전통문학의 장르가 아닌 노랫말이 문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 이후 더욱 뜨거워졌다. 이는 마치 회화·조각 등 전통적인 예술 장르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욕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체를 움직이며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공장에서 제작하는 TV 브라운관을 쌓아 만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예술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스웨덴 한림원의 사무총장은 밥 딜런의 노랫말에 대해 ‘귀를 위한 시’라고 극찬했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호머와 사포가 쓴 시를 사람들이 악기로 연주하며 노래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평했다.

밥 딜런을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T.S 엘리엇, 월트 휘트먼 등에 견주는 영문학과 교수들도 있다. 한림원은 밥 딜런이 시대 비판정신과 깊은 고민으로 가사를 써 문학적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지만 노래에서 가사만 따로 떼어내 평가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문학의 폭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문학의 존재기반이 흔들린다는 시각도 있다. 문학가와 전문가들 중 일부는 가수로서 딜런은 좋아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불쾌해했다. 문학상 수상작품을 보기 위해 책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서 노래를 듣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노벨상을 주겠다면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한 60~70년대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대중가요, ‘눈’보다 ‘귀’ 사로잡아야

여러 논란에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학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출신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도 기존 문학장르인 소설·시·희곡·시나리오 등에 해당하지 않는 르포문학이었다. 벨라루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면서 경험자들의 구술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자의 저널리즘 정신에 입각해 쓴 글이 반체제작가로 인정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바탕이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문학의 추락과 문학의 진보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됐다. 하지만 21세기 문학의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지는 계기로 삼는 것이 시대의 방향에 부합하지 않을까. 문학만이 아니라 음악·미술·패션·무용·스포츠를 비롯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도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수용되는 추세기 때문이다. 융합의 시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국의 대중가요계도 이번 기회에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한류열풍 속에 가사가 지니는 의미와 중요성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60년대 전통 트로트가요 중에는 서민의 애환을 가사에 풀어낸 곡이 많았다. 그런 곡은 귀로 듣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가사 내용에 젖어들면서 마음으로 들었다.

70~80년대 포크가수들은 가사를 통해 밥 딜런만큼이나 사회에 저항하는 정신을 표출하기도 했다. 하나의 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서정적인 아름다운 가사도 모국어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냈다. 반대로 기존 유명시인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 널리 애창된 곡도 많았다.

시인 김소월의 시 중에도 ‘개여울’, ‘부모’, ‘진달래꽃’, ‘못잊어’, ‘산유화’, ‘초혼’, ‘엄마야 누나야’,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비롯해 대중가요의 가사로 사용된 시가 꽤 많다. 한국도 이처럼 과거에는 노래와 시가 하나의 몸체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가요 관련 상 중 가사부문도 권위 있는 상으로 간주됐다. 정태춘이 쓴 서정성 넘치는 ‘시인의 마을’은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작사부문상(1979년)을 수상했다.

작사가로 활동한 시인 출신 박건호는 시인답게 주옥같은 가사를 많이 써 KBS 가요대상 작사부문(1982년), KBS 제1회 가사대상(1983년), 제2회 가사대상(1984년) 등을 연이어 수상했다. 1985년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아름다운 노래 대상과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그는 1969년에 서정주 시인의 서문이 실린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펴내며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해 ‘타다가 남은 것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 ‘기다림이야 천년이 간들 어떠랴’ 등 다수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남겼다.

박건호는 1972년 지금까지도 애창되는 박인희의 ‘모닥불’을 통해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국민가요가 되다시피 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 수많은 히트곡의 가사를 썼다.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 나미의 ‘빙글빙글’, 이자연의 ‘찰랑찰랑’, 장재남의 ‘빈 의자’처럼 의미를 곱씹을 만하고 감칠맛 나는 가사가 많았다. 이 작사가들이 다시 나올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양성의 사회에서는 가벼움과 진지함이 공존해야 하며 변화는 한 방향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중가요가 젊은 가수들의 조각 같은 얼굴과 섹시한 몸매, 육감적인 춤을 통해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 방향으로만 변하는 게 아니라 귀를 통해 문학의 향기처럼 마음 깊이 스며드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도 필요하다.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서 좋은 가사의 노래를 사람들이 부르거나 들으면 정서가 고취되지 않겠는가.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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