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도시난민]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생 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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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최근 도시화·산업화로 원주민들이 터전을 빼앗기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머니위크>는 재개발 열풍에 짐을 싸야 하는 원주민들과 특색거리의 이면, 해외사례 등을 통해 우리사회에 뻗어내린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최근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도시재생, 재개발 등의 말을 포괄하는 것이다. 주거세입자에 비해 제도적 장치가 취약한 상가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끌어들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큰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은 일부 상권이 몰개성화되고 침몰하면서 상업지구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어두운 측면이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이 가열차게 나오는 이유다.

◆상생협약, 자율상권 지정… 상권보존 활발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문제점을 제기해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곳은 서울 성동구다. 성동구는 지난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관련 조례를 신설하고 올 초에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국장급 기구인 지속가능도시추진단을 신설해 성동구를 사회적 경제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성동구의 이 같은 방침은 다른 지자체들에 확산됐다. 전국 39개 지자체가 모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창립했다.

서울시도 관련 방침을 내놓았다. 시는 우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하고 지역 내에서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6개 지역(대학로·인사동·성미산마을,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해방촌, 세운상가, 성수동)에 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과 자원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한 모범적인 개발사례를 뽑아 시 전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은 올초 세운상가 재생사업 착수식에서 임대인, 임차인 대표들과 젠트리피케이션 상생협약을 맺었다. /사진제공=서울시

서울시는 구체적으로 ▲건물주-임차인-지자체 상생협약 ▲소상공인에 앵커시설 대여 ▲장기안심상가 운영 ▲소상공인 상가 매입 지원 ▲법률지원단 운영 ▲상가임차인 보호조례 제정 ▲젠트리피케이션 공론화 추진 등의 방안을 내놨다.

건물주와 임차인 간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지자체가 핵심시설, 건물 등을 구입해 영세 소상공인에 값싸게 임대하거나 소상공인이 건물을 저리 임대로 매입하게 돕는 것이 골자다. 또 건물주에게 리모델링비용을 지원하는 대신 임대료를 일정 기간 묶어두는 것도 포함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대응도 이어졌다. 최근 기재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자영업자 경쟁력 강화방안’이 포함됐다. 가장 큰 화두는 자율상권법 제정이다. 임대료가 큰 폭으로 오른 상권에 한해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내용의 자율상권법 제정을 정부가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자율상권법은 법으로 자율상권을 정한 뒤 건물주와 상인의 자율협약을 통해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막고 상가 임대차계약 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발의된 후 정부가 제정을 추진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5월 전국 13개 지자체장 및 부단체장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강제성 없는 대책… 통합적 이해 필요


전문가들은 각 지자체와 정부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을 다양하게 내놓았지만 효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지자체들이 제시한 방안의 핵심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에 대한 이해’인데 별다른 강제성이 없어 임대인이 동참할지가 불투명하다.

실제로 지역상권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자발적 상생협약이 마련됐지만 그저 협약에 그칠 뿐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다는 게 영세상인들의 주장이다.

소상공인 상가매입 지원정책 역시 현실성이 부족해 보인다. 서울시는 우리은행과 협력해 상인들에게 8억원 범위 내에서 건물 매입비의 최대 75%까지 시중금리보다 1%포인트 낮게 장기(최장 15년)로 빌려줘 소상공인들의 상가건물 매입을 돕기로 했다. 그러나 소상공인에게 담보자산이 있을 개연성이 낮을 뿐더러 이자가 시중금리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빚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사회·지리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 자체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 개념을 남발해 의미 자체가 퇴색됐다고 지적한다. 이 용어가 발생한 서구에서는 ‘주거계층의 변화’에 담론의 중심이 맞춰진 반면 한국에서는 ‘문화공간의 임대료 상승’으로 축소·퇴색됐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왜곡된 개념 속에서 발생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 특정상권의 쇠퇴를 막는 데 효과적이겠지만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의 다양한 논의 분야 중 하나인 상업 혹은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주장하는 궁극적 이유인 ‘마을 공동체 보존’에서 벗어나 하위개념인 상권과 관광지 보존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물론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대책은 이전부터 주택 임대차보호법 등을 통해 나타났지만 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단발성 대책에 멈출 우려가 있다고 학계는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윤신 chldbstls@mt.co.kr  | 

머니S 산업 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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