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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평양냉면 배달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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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맹맹 히스무레 빛 육수, 찰기없이 푸석 끊기는 메밀면…북한의 랭면이 서울 오장동 농마국수를 밀어내고 있고, ‘평뽕족’은 매일 늘고 있다. <머니S>가 맛에 웃고 가격에 우는 평양냉면집 5곳을 맛봤다. <편집자주>

[냉면예찬-상] 근현대사 증인 ‘평냉’의 모든 것


봄인가 싶더니 어느덧 여름이 왔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에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해지는 이맘 때가 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혹자는 ‘슴슴한’ 육수의 평양냉면을 음식의 정수로 꼽으며 극찬하지만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데다 비싸기까지 하다며 치를 떠는 이들도 상당하다.


서울 종로 창경궁로의 한 냉면집에서 시민들이 냉면을 먹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평양냉면은 한국음식의 이단아라 할 수 있다. 꿩 육수, 쇠고기 육수 또는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메밀로 만든 면을 말아 시원하게 즐기는 평양냉면의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함이다. 본래 한국음식은 맵고 짜고 달고 구수한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음식은 별다른 기교없이 담담하다. 통상 쫄깃함이 생명인 면발도 부드럽지 않고 거친 데다 툭툭 끊어지기까지 한다.

이런 독특함으로 인해 평양냉면은 ‘배워야 하는 음식’이라고 평가된다. 한번 먹어서는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없고 서너번쯤 먹어야 평양냉면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수차례 학습으로 길들여지면 독특한 맛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소위 ‘평뽕’, ‘냉면성애자’로 불리는 평양냉면 ‘광신도’들은 전국의 평양냉면집을 돌며 맛을 평가하고 저마다의 순위매기기에 열을 올린다.

평양냉면은 한국인에게 어떤 음식이며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희스무레 슴슴 ‘평양냉면’

세계 음식사를 살펴보면 차갑게 먹는 면은 의외로 흔치 않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뜨거운 면의 대표격이고 동남아시아 베트남의 쌀국수 ‘포’는 더운 현지 날씨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다. 우리와 식습관이 비슷한 동양에는 냉면과 비슷한 음식이 여럿 있지만 냉면의 얼음 동동 뜬 차가움과 결이 다르다.

오늘날 한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평양냉면이지만 우리 문헌에 냉면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 문인 장유의 <계곡집>이다. 다만 조선시대 중기를 지나면서 냉면은 높은 벼슬아치를 중심으로 즐기는 음식이 됐고 19세기부터 냉면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됐다. 시인 백석은 자신의 시 <국수>를 통해 평양냉면을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희스무레 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노래했다.


경우에 따라 고춧가루를 올리기도 하며 삶은 계란 대신 계란지단을 넣기도 한다. /사진=박흥순 기자

냉면은 한반도 서북부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냉면은 평양과 황해도 해주를 비롯한 평남일대가 원류인데 공교롭게도 그 지역에서는 기생문화도 발달했다. 양반이 기방에서 거하게 한상 차려먹은 후 숙취를 해결하기 위해 냉면을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냉면을 내놓는 이유도 조선시대 기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뿌리를 둔 까닭일까. 평양냉면은 술과 궁합이 잘 맞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술을 먼저 마시고 면을 먹어야 한다’는 ‘선주후면’(先酒後麵)의 으뜸은 평양냉면이다. 차가운 냉면 육수가 얽힌 속을 풀어주고 면발을 이루는 메밀에 함유된 아스파르트산이 숙취해소에 도움을 준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냉면 한 그릇 먹고 나면 온몸의 열기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해장에도 그만이다.

◆반가도 대중도 ‘냉면 사랑’

반가의 음식이었던 냉면은 일제강점기 현대식 냉장고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됐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북에서 남으로 전파돼 지역을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다.

1920~1930년대에는 평양냉면 배달부 ‘중머리’가 등장하면서 대중화를 이끌었다. 하루 60전~1원의 임금을 받은 중머리는 한손에 수십 그릇의 냉면이 담긴 목판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냉면을 전파했다. 그렇다면 붇기 쉬운 평양냉면을 왜 배달해 먹었을까. 

혹자는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이 냉면배달이라는 일종의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남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매우 꺼렸다. 그들은 이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여겼으며 식사를 독상으로 받아야 품위가 산다고 생각했다. 냉면배달은 196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정부가 여름철 냉면판매를 금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후 1970년대 성사된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평양냉면의 인기는 다시 점화됐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행사에 평양냉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두차례 정상회담과정에서 평양냉면이 상에 오르며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냉면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냉면성애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지난달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시내 냉면의 평균 가격은 8962원으로 1년 만에 3.1% 상승했다. 주교동 우래옥과 방이동 봉피양은 한 그릇 가격이 1만4000원에 달했으며 대부분의 유명 냉면전문점에서는 1만2000원 이상을 줘야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평소 평양냉면을 즐겨먹는다는 ‘평뽕’ 직장인 김철영씨(35)는 “학생 시절이던 10년 전보다 가격이 40% 가까이 올라 자주 먹기엔 부담이 된다”며 “면발, 고기 등 내용물은 줄어든 데 반해 가격은 매년 올라 머지않아 냉면이 다시 소수만을 위한 음식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6호(2019년 6월11~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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