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장품 1번지’ 명동은 정말 위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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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신화'를 이끈 화장품 로드숍이 위기다. 그간 누적된 내수 경기 침체와 브랜드 경쟁 심화, 온라인 쇼핑 증가와 달라진 유통구조 등에 적응하지 못한 로드숍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한 것. 한때 잘 나가던 로드숍 브랜드들은 왜 한계에 직면했을까. <머니S>가 로드숍 브랜드 시장을 긴급 진단했다. 위기의 근본원인과 실태를 점검하고 생존전략이 뭔지 짚어봤다.<편집자주>

명동거리 초입, 화장품 로드숍 모습./사진=김정훈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1세대 로드숍의 몰락] ③ 골목골목 스며든 찬바람

"마이 이장 미엔모 더 화 송 이 장."(마스크팩 원플러스원 행사 중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명동거리를 뒤덮는다. 기자가 눈길을 줘도 딱히 붙잡지 않는다. 대신 뒤에 오는 관광객 일행에게 밝은 미소를 보내며 샘플을 손에 쥐어준다. 머쓱해진 기자가 매장 입구 마스크팩 가판대로 발길을 옮겨보지만 응대하는 직원이 없다. 3~4명의 직원은 모두 다른 고객을 상대로 영업에 열심이다. 이들에게 기자는 돈 안 되는 뜨내기로 비쳤을까. 

지난달 29일 오후, 국내 '화장품 1번지' 명동을 찾았다. 화장품 로드숍마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얼핏 봐서는 로드숍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국내 화장품 로드숍 부흥을 이끈 명동신화는 현재진행형일까, 과거완료형일까.

◆골목 로드숍에 스며든 위기

명동은 국내 화장품 1번지답게 어딜 가도 로드숍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커피공화국으로 불리던 시절, 한집 걸러 한집이 커피숍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적어도 명동 6번출구 초입부터 300여m까지 거리는 한집을 굳이 거르지도 않는다. 화장품가게 다음이 화장품가게다. 

입구에는 1명에서 많게는 3명까지 나와 '세일', '1+1' 피켓을 들고 들어오라며 손짓을 보낸다. 한손에는 마스크샘플이 들려있다. 이들의 목청은 동대문상인 저리 가라다. 한국말과 일본말, 중국말이 뒤섞인 이들의 목소리가 명동거리를 뒤덮는다. 외국인관광객으로 보이는 서너명이 직원에게 마스크팩 몇개를 받아들고 매장으로 향하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명동역 6번출구 앞 로드숍거리에 들어서자 대형 초록색 간판의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이 보였다. 내부에도 제법 많은 고객이 들어찼다. 이곳 역시 입구에서 직원이 50% 세일 피켓을 들고 목청껏 홍보한다.

대부분의 로드숍은 직원이 밖으로 나와 고객을 유인한다. 한국말보다는 중국말, 일본말이 더 많다. 이날 기자가 로드숍 입구를 배회하듯 걸었지만 다가오는 직원은 없었다. 눈을 마주쳐도 별 반응이 없다. 이들에게는 외국인관광객이 더 중요한 고객이다.

명동의 화장품 로드숍 주고객은 중국, 일본 등 외국인관광객이다. 최근에는 중동고객도 크게 늘었다. 이들은 한번 방문 시 여러 상품을 대량구매한다. 기껏해야 상품 한두개를 구매하는 내국인보다 외국인관광객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명동의 한 로드숍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사진=김정훈 기자

명동역 6번출구 밖으로 보이는 로드숍들은 위치상 고객 유치가 어렵지 않은 듯했다. 대부분의 직원이 말을 걸기 힘들 정도로 고객응대에 여념이 없다. 제품 몇개를 만지작거리자 그제서야 직원이 다가온다. 이 직원은 "여전히 장사가 잘된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그랬다. 

구석진 골목에도 로드숍 수는 줄지 않았다. 초입에서 본 특정 브랜드 매장이 골목에도 존재한다. 이는 각 브랜드가 명동에서만 2~3개의 로드숍을 운영해서다. 다만 고객 수에는 차이가 컸다. 

골목에 자리한 일부 로드숍은 직원조차 자리를 비울 정도로 한산했다. 애초에 고객이 많지 않은 탓인지 이곳은 아르바이트 직원 1명만 근무했다.

명동의 한 화장품 로드숍 내부./사진=김정훈 기자

인근 다른 로드숍을 찾았다. 여기는 담당매니저가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일한다. 한산한 이유를 묻자 매니저는 "접근성이 좋은 명동거리 초입 대형매장 이용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전에는 이런 소형 로드숍도 고객이 넘쳐났다. 위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출이 하락세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가게가 한산한 또 다른 로드숍에서 몇마디 더 들을 수 있었다. 이 직원은 중국인 단체관광객 감소에 따른 타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단체관광객이 아닌 개인 관광객이 늘어 대형 로드숍 매출도 사드 배치 이전보다 줄었을거라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매출은 사드 배치 이전 대비 30~40% 줄었다. 대형 로드숍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중국자본으로 만들어진 화장품 브랜드 비브라스 로드숍은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넓은 매장 안에 고객 두어명만이 화장품을 구경 중이다. 남은 직원들은 한곳에 모여 덩그러니 고객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기업 로드숍만 살아남나

이들이 밝힌 로드숍 매출 하락의 또 다른 이유는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성업이다. 대부분의 로드숍이 자사 브랜드 제품만을 판매하지만 H&B스토어는 브랜드의 제한이 없다. 

대표적인 H&B스토어 CJ올리브영을 찾았다. 이곳은 외국인은 물론 젊은 내국인 여성고객도 많았다. 마스카라 코너에서 상품을 고르던 고객 김모씨(30)는 "로드숍 방문 시 1대1로 직원이 붙어 이것저것 구매를 권해 부담된다"며 "대신 이곳은 샘플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제품도 여러 브랜드가 구비돼 선택권이 넓은 편"이라고 밝혔다.

로드숍 제품 가격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객 박모씨(22)는 "로드숍 제품은 싼맛에 산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요즘은 백화점보다 가격경쟁력이 좋지도 않다"고 말했다. 

기자가 둘러본 로드샵 입구에 대부분 '50%할인'이 대문짝만하게 부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답이다. 또 다른 고객 김모씨(34)는 "50% 할인은 일부제품에만 허용된다"며 "관광객이야 이왕 명동에 왔으니 대량구매하겠지만 한국인은 혜택이 많은 온라인쇼핑이나 다른 대안이 많은데 굳이 로드샵에 방문할 필요를 못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로드숍 2층에 마련된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는 고객들./사진=김정훈 기자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이니스프리 로드숍이 보였다. 건물이 무려 4층이다. 1층은 숍, 2~3층은 카페, 4층은 짐을 맡아주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카페 이용객에게는 제품 할인 등 혜택이 주어졌다. 구입한 상품 여러개를 손에 쥔 한 외국인관광객이 피곤한 듯 의자에 푹 눌러앉았다. 그들에겐 장시간 쇼핑 후 쉴 수 있는 이런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러한 서비스는 모회사 아모레퍼시픽의 자본력이 한몫 했다. 로드숍 한곳도 유지하기 벅찬 소형 브랜드는 꿈꾸기 힘든 사업모델이다. 앞으로 명동 로드숍시장은 자본력이 탄탄한 대기업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중소업체는 살길이 더욱 팍팍해지는 것이다. 

화장품 1번지 명동은 여전히 활력 넘쳤다. 다만,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위기가 감지됐다. 중동말을 할 줄 아는 아르바이트생을 최근 잘랐다는 한 로드숍 매니저의 푸념이 현재의 명동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게 명동 로드숍은 '빛 좋은 개살구'가 돼가고 있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5호(2018년 11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정훈 kjhnpce1@mt.co.kr  | 

안녕하세요. <머니S> 김정훈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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