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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밥' 사먹는 시대… "당신은 햇반을 얼마나 먹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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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나른한 주말 점심도 거른 채 잠만 자다 보니 어느덧 오후 4시. 배는 고픈데 씻고 나갈 기운은 없고 막상 외출하려 해도 사먹을 게 마땅찮다. 결국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고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하나로는 모자라려나 중얼거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즉석밥을 얼마나 먹을까.

처음에는 방부제 덩어리겠거니 하고 멀리했는데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먹는 걸 넘어 주식이 된 즉석밥. 밥을 직접 해먹던 시절에는 밥이 모자랄 때를 대비한 ‘비상용’이었는데 이제는 ‘밥이 없네’가 아니라 ‘햇반이 없네’라고 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게으름뱅이에 1인가구인 기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즉석밥을 언제부터, 얼마나 먹었을까. 즉석밥시장의 절대강자 햇반을 통해 알아봤다.

◆“누가 돈 내고 맨밥을 사먹나” 했지만…

CJ제일제당의 햇반은 올 들어 7개월 동안 2억개가 팔렸다. 대한민국 국민이 1인당 4개씩 먹은 셈. 쌀가마니로 환산하면 26만5000가마니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즉석밥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햇반은 우리나라 즉석밥의 효시로 생각되지만 그전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자매품이 있었다. 

밥은 집에서 해먹는 것이지 돈 들여 사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던 1989년. CJ제일제당(당시 CJ㈜)은 알파미로 만든 냉동밥을 출시하며 즉석밥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일본 즉석밥시장의 성장을 지켜보다 사업가능성을 발견한 것.

알파미는 쪄낸 다음 더운 바람으로 말린 쌀인데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돼서 즉석식품, 전투식량 등에 적합하다. 그러나 전투식량을 먹어본 이라면 알 것이다. 생쌀인 듯 아닌 듯 끔찍한 식감을. 결국 낮은 품질로 인해 소비자에게 외면받았고 CJ제일제당은 여러모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 사업을 중단했다. 

그러다 1993년 동결건조미로 다시 한번 즉석밥시장에 도전했지만 소비자들은 덜 익은 듯 꼬들꼬들하거나 푸석푸석한 밥을 찾지 않았다. 이 기간 다른 업체에서도 냉동밥, 레토르트밥 등을 내놨지만 모두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세번째 도전을 감행했다. 집밥 수준의 품질만 확보하면 충분히 성공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 

/사진=CJ제일제당 제공

◆맞벌이·1인가구 증가세 '물 들어올 때 노 젓다'

1985년 약 66만가구였던 1인가구는 1990년 102만가구, 1995년 164만가구로 10년 새 2.5배 증가했다. 편의성과 신속성을 중시하는 1인가구의 특성상 식생활 패턴의 변화가 예상됐고 즉석밥은 새로운 식생활 트렌드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었다. 

나아가 기혼여성 취업률과 전자레인지보급률의 증가세도 즉석밥의 성공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었다. 취업여성 수는 1980년 375만명에서 1990년 56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햇반 출시 직후인 1997년에는 710만명을 기록했다. 아울러 당시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65%까지 올랐다.

이 즈음의 식생활패턴을 살펴보면 맞벌이부부가 늘어나고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습관 차이로 따로 밥 먹는 일이 잦아졌다. 식사를 매번 준비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차려먹거나 반·완전조리식품을 이용해 준비시간을 줄이려는 경향이 커졌다.

1996년 12월 CJ제일제당은 무균포장 즉석밥을 출시했다. 제품명은 햇쌀로 지은 맛있고 신선한 밥을 의미하는 '햇반', 시중 음식점의 공기밥이 한그릇에 1000원인 점을 감안해 가격은 1000~1150원으로 책정됐다.

재밌는 건 출시 전 브랜드네이밍 설문조사를 했는데 햇반이 꼴찌를 했다는 사실. 후보는 ▲햇반 ▲옹솥밥 ▲밥또였다. 설문조사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순수 우리말인 데다 쉽게 기억하고 발음할 수 있는 점 때문에 즉석밥의 이름은 햇반으로 지어졌다. 

한편 이 같은 흐름은 일본 즉석밥시장의 성장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처럼 밥이 주식인 일본에서는 1980년 살균가공한 레토르트밥이 처음 출시됐고 84년에는 냉동밥이, 88년에는 햇반과 같은 무균포장 방식의 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무균포장밥은 1990~1995년 584% 성장하며 단숨에 즉석밥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사진=뉴시스

◆'가끔 먹는' 것에서 '믿고 먹는' 주식으로

'즉석밥=낮은 품질'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출시된 햇반은 연평균 4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출시 3년 만에 1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국내 즉석밥시장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CJ제일제당은 즉석밥시장에서 두번 실패하며 밥의 품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장조사를 통해 많은 소비자가 이천쌀을 선호하며 촉촉하고 윤기가 흐르는 밥, 찰지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갓 지은 밥을 ‘맛있는 밥’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 품질향상을 위한 무균화 포장기술, 압력밥솥 원리를 이용한 취반 공정, 우량품질의 원료미 선정 등 사람들이 선호하는 쌀과 밥의 특징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햇반은 ‘집에서 먹는 듯한 밥’이라는 기대치를 충족하며 소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처음에는 옆나라의 성공사례 덕에 뛰어들었지만 당시의 국가통계는 이런 노력에 힘을 실어줬다. 통계가 한국사회의 식생활패턴 변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햇반의 초기 타깃은 25~34세의 전업·맞벌이주부였다. 식사는 밥으로 해야 든든하다는 굳건한 관념은 여성직장인에게 큰 부담이었다. 여성은 취업을 해도 가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시절이다. 밥을 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큰 주부들에게 햇반은 얼마간의 해방구를 제공했다. 

당연히 난관도 있었다. ▲장기간 보관하는 밥에 대한 불신 ▲방부제에 대한 불안 ▲무균포장밥=인스턴트 식품이라는 생각 ▲밥은 집에서 해먹어야지 돈 내고 사먹는 게 아니다 라는 오래된 인식까지 즉석밥에 대한 편견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특히 '밥은 최소한의 정성'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이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밥이 떨어졌을 때는 햇반", "가끔은 햇반이 좋다" 등의 광고문구로 가정의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을 취했다. 


/사진=CJ제일제당 제공

◆숫자로 보는 햇반… '지구 7바퀴 반'

삼시세끼를 면이나 빵으로 해결하면 그날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만큼 우리나라 사람에게 밥은 주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밥시장은 개척만 할 수 있으면 매출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시장이다. CJ제일제당은 일본의 사례를 통해 시장진출 기회를 발견했다. 

아닌 게 아니라 햇반은 20여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7년 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햇반은 2014년 1800억원, 지난해 3200억원을 기록하며 20년 만에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올 연말에는 출시 이후 총 누적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시 20주년이던 2016년 기준 햇반의 누적판매량은 17억개다. 이를 쌀가마니로 환산하면 약 225만가마니로 무게는 18만t에 달한다. 쌀 한가마니에서 755개 정도의 햇반이 나오는 셈.

여기에 지난해 연간판매량 3억3000만개와 올해 7월까지의 판매량 2억개를 더하면 출시 이후 지금까지 22억3000만개가 팔렸다. 대략 295만2000가마니에 해당하는 양이다. 국민 1명당 햇반을 40개 이상 먹었다는 의미.

이제까지 팔린 햇반 용기(지름 13.7cm)를 나란히 늘어놓으면 지구(둘레 4만192km)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 수 있다.

CJ제일제당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7명이 최근 1년 내에 햇반을 사본 적이 있다. 햇반을 사본 소비자 중 재구매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10명 중 9명에 달했다.

1~2인 가구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햇반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햇반은 최근 수년간 계속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김병규 CJ제일제당 편의식담당 부장은 “햇반’은 20년 넘게 국내 상품밥시장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며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시장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트렌드를 리딩하는 ‘대한민국 대표 집밥’ 브랜드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영신 lebenskunst@mt.co.kr  | 

안녕하세요 머니S 강영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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