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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국수 이영준 대표 … 50여 년 역사의 분식집, 3대를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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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국에 근무했던 아버지는 근무지가 자주 바뀌었다. 부친의 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다. 이영준 대표는 고흥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교를 마치고 곧 서울로 올라왔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장남인 그는 과일 장사로 나섰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돈벌이가 쉽지 않았다. 어린 풋내기 장사는 곧 과일 파는 일 대신 상계동에서 돼지를 길렀다. 돼지도 순순히 자라주지 않았다. 

◆ 모친의 '맛골분식'에서 ‘아현시장 대박신화’ 창조
모친은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청소년기에 접어든 3남1녀의 자식들 생계를 떠맡았다. 숙부가 서울 아현시장 상인회 간부여서 모친은 아현시장 내에 자리 한 칸을 얻어 장사를 할 수 있었다. 1966년 모친은 아현시장 안에 '맛골분식'이라는 분식집을 차렸다. 
/ 월간 외식경영 제공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132㎡(40평) 10개 테이블 규모로 시장 안에서는 제법 큰 점포였다. 어머니는 비빔국수, 들깨 칼국수, 만두, 냉모밀 등의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분식집을 시작한 모친은 의외로 금방 자리를 잡았다.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과 모친의 빼어난 음식솜씨가 만나 생겨난 현상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큰아들이 양돈 사업에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내 밑으로 들어와서 일하라”며 불러들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모친의 분식집에서 일을 시작한 것, 이 대표가 평생 외식업계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대표의 합류로 '맛골분식'은 좀 더 합리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일종의 젊은 피 수혈이 이뤄진 것. '맛골분식'은 모친의 타고난 장사 수완과 손맛 덕분에 날로 번창했다. 

요즘 대박집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서서 입장하는 진풍경을 연출, 이웃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점포 앞길이 정체되고, 손수레가 제대로 지나가질 못해 수레꾼들이 짜증을 낼 정도였다. 늦은 시각인 새벽 1~2시까지 주부, 회사원, 여대생, 직업여성 등의 손님들이 바글거렸다. 아현시장에서 가까운 이화여대의 학보사에서도 취재를 나와 학보에 소개할 정도로 '맛골분식'은 소문난 맛집으로 떠올랐다.

◆ 강남으로 이전 '밀란국수'로 제2 전성기 누려

이 대표가 합류한지 3~4년이 지나자 장사가 더 잘 됐다. 서울 자양동 대로변에 2층짜리 상가주택을 매입해 임대를 놓았다. 장사가 탄력을 받자 이 대표의 동생도 분식집에 합류했다. 동생은 서울의 명문 K대를 나왔지만 놀고 있었다. 

재학 중 학생운동에 몸담았었는데 이것이 졸업 후 취업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워낙 영민했던 동생은 그 후 따로 독립해 떡볶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은 서울 압구정동과 대구 동성로에 유명 떡볶이 브랜드를 각각 하나씩 보유, 운영하고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새로운 형태의 쇼핑센터가 탄생하고 쇼핑 환경의 현대화로 전국 재래시장이 쇄락해갔다. 아현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시장 주변이 재개발 되면서 아현시장은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이웃들이 하나 둘 장사를 포기했다. 

이 대표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40세가 되던 해인 2003년 아현시장에서 지금의 개포동 점포로 이전했다. 주방 포함 430㎡(130평)의 넓은 점포였다. 간판도 '맛골분식'에서 '밀란국수'로 바꿔 달았다. 점포 이전은 장소와 옥호의 변경 이외에도 ‘어머니의 시대에서 아들의 시대로’ 세대가 교체됐음을 의미한다. 

점포 콘셉트도 시장 냄새를 덜어내고 세련된 도회풍 국수집 이미지를 더했다. 김밥, 튀김, 떡볶이가 사라졌다. 어머니의 만두전골은 샤브샤브로 변신했다. 복칼국수와 코다리찜이 메뉴에 추가되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다. 점포이전 후에도 어머니는 꾸준히 아들의 일을 도와주셨다.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현역이었다. 어머니는 '밀란국수' 주방 앞자리에서 꼿꼿한 자세로 만두를 빚었다. 그 모습은 손님들에게 '밀란국수'의 모습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지금도 모친 뜻에 따라 만두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 며느리와 아들 손자가 직접 빚는다.

◆ 가맹사업 실패로 한 때 기우뚱, 다시 안정 찾고 아들에게 주방 맡겨

2~3년의 적응기간이 지나자 강남에서도 어머니와 아들 모자의 음식은 통했다. '밀란국수'의 음식 맛이 높은 평가를 받자 주변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프랜차이즈 사업을 권유했다. 결국 2013년에 일을 저질렀다. 마음의 준비도 사업 검토도 없이 떠밀리다시피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과 수도권 몇 곳에 가맹점을 내줬다. 장사는 모두 잘 됐다. 그러나 본사와 가맹점 간 음식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서로 맞지 않았다. 디테일이 필요한 한식 메뉴 특성 상 체인 사업에 한계가 있었다. 갓 볶아낸 들깨도 본점을 벗어나면 그 맛이 달라졌다. 음식 조리법의 표준화 역시 쉽지 않은 난제였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새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고 선전효과를 내려면 안테나숍을 세워야 한다고. 그래서 길 건너편에 월세 2500만원짜리 250평 대형 점포를 무리해가며 얻었습니다.”

안테나숍을 지나치게 큰 규모로 시작해 경비가 과다하게 지출된 것도 재무 건전성을 떨어트렸다. 이 대표는 체인 사업에 대한 이해와 좀 더 철저한 준비가 부족했음을 느끼고 가맹사업을 접기로 했다. 결국 맘고생 몸 고생을 하고 20억 원 정도의 손실을 본 채 체인 사업을 정리했다. 그나마 본점을 남겨두길 잘 했다. 

지금은 초심을 갖고 다시 본점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은 반드시 탈이 생긴다는 교훈을 얻는데 너무 많은 교육비를 들였다. 이제 가맹사업에는 눈길도 주지 않을 예정이다. 현재 주방은 아들 이덕재(28) 씨가 맡아 3년째 이어가고 있다.

“식당 일을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지요.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갈수록 내 일이 만족스럽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3대째 맛집을 이어간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강동완 enterfn@mt.co.kr  | twitter facebook  |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머니S' 편집국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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